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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의 방 > 불립종의 수행

 
수행과 그 의의(意義)

신앙생활이란 수행이 따르는 것입니다만, 여기서는 불립종의 승려와 신자가 하고있는 수행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불립종의 수행은 구창행이라고 합니다.
"구창행(口唱行)"이란 입으로 "나무묘호렌게교(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수행을 말합니다.

불교에서는 신·구·의(身口意)의 삼업(三業)이라고 하여 몸으로 하는 수행뿐만이 아니고 입이나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말하거나 생각하거나 느끼는 것도 업(業) 즉 행위 행동으로 간주합니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수행도 신·구·의 삼업으로 크게 나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법화경이라고 하는 경전은 옛부터" 모든 경의 왕"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되어 친숙해진 경전이였지만 법화경의 수행은 다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법화경 중에서도 몸과 입과 마음으로 하는 여러가지의 수행이 설하여져 있기 때문이지만 이것을 크게 나눠보면 엘리트에게 적합한 수행과 범인(凡人)에게 적합한 수행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일련대사는 말법이라고 하는 지금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려운 수행은 할 수 없는 범부이므로 신구의 삼업 중에서도 구업(口業)에 중점을 둔 수행,즉 입으로 "南無妙法蓮華經" 라고 부르는 것을 말법시대의 법화경 신앙의 수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어떠한 수행이든 불도수행의 목적은 미혹(迷惑)과 마음의 더러움을 없애고 마음을 부처님 같은 경지까지 정화시켜 공덕화 해가는 것에 있습니다. 불립종은 스스로의 재능이나 지혜(智慧)를 가지고 깨달으려고 하는 자력(自力)의 신심이 아니고 오로지 "南無妙法蓮華經" 라고 부름으로써 그 南無妙法蓮華經의 경속에 들어있는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받아서 우리들의 마음을 정화하려고 하는 경에 힘을 받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종단입니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육식(六識) ·마나식(七識) ·아라야식(八識)으로 세가지 층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육식이라고 하는 것은 시각·청각·취각·미각·촉각 이라고 하는 다섯가지의 감각작용과 감각기관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마나식은 이보다 한층 더 깊은 곳에 있는 마음의 한 부분으로 자신도 볼 수 없는 마음의 심층부입니다. 그리고 그 마나식의 더 심층부에 있는것이 아라야식입니다. 이 아라야식은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보거나 듣거나 생각하거나 이야기한 것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여둔다고 하는 작용을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아라야식은 업(業)을 상속(相續)한다고 하여 죽음에 의해 육체가 없어져도 계속 존속하여 가면서 전세에서 몸과 마음과 입으로 행한 모든 행위를 저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아라야식에 저장된 체험 행위를 불교에서는 종자(種子)라고 합니다.
왜 아라야식에 저장된 행위를 종자라 하는가 하면 이러한 종자는 자신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아라야식의 종자는 자기의 운명을 만들어내는 정신적 에너지로써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몸과 입과 마음에 의한 일체의 행위는 종자로 되어 아라야식에 입력되고 저장해가는 것임으로 만약 하찮은 일과 좋지않은 행위를 한다든가 입에 담는다면 그것은 곧 더럽혀진 종자로 되어 아라야식에 저장되고 자신의 운명을 나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더럽혀진 종자 자기의 운명을 나쁜 쪽으로 이끌어가는 종자를 불교에서는 죄장(罪障·죄에 의해오는 장애)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불교가 목표로 하는 마음의 정화란 우리들이 느낄 수 있는 육식(六識)-(여섯가지 감각기관)의 정화 뿐만이 아니고 아라야식의 죄장까지도 씻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라야식의 죄장까지 소멸할 수가 있을까요?
아라야식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강력한 정화력을 가진 종자를 아라야식에 까지 투입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장이라고 하는 더럽혀진 마음을 씻어내는 강력한 힘을 갖춘 종자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혼백이며 터득하신 진리의 법 즉 법화경의 제목"南無妙法蓮華經"인 것입니다.

우리들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부처님의 말씀대로 수행하면 과거세 부터의 죄장이 점점 없어져 운명이 좋게 되는 것은 이 법화경의 南無妙法蓮華經가 아라야식의 죄장을 정화하는 최고의 불종자(佛種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있는 많은 종단이 제목을 부르는 것 보다 오히려 경을 단조롭게 읽기만 하는 소위 독경을 중요시하는 종단도 많이 있습니다만, 불립종은 오로지 법화경의 제목을 가능한 많이 부르는 것을 수행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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